사랑니의 선물

8월 12th,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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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에 관해서는 트라우마가 있다.
정수리에 손을 얹으면 몸에 힘이 빠지듯이
치과의 의료용 의자에 눕게되면 온 몸은 식은땀으로 흠뻑 젖는다.
신경계통으로 보자면 ‘제대로신경’의 작용과 같다.
그 두려움 때문에 나는 항상 치과가 가기 싫다.
치과 문턱까지 가고 돌아오길 수번을 했다.
하지만 후일의 예견된 고통 앞에 가느냐 마느냐의 문제는 항상 나의 통제를 벗어나 있다.

현대 의학은 회피의 좋은 방편을 제시해 준다.
치료를 미뤄도 완치된다는 확신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물론 이후는 치료비의 문제로 접어든다. 일방적인 우상향 곡선이다.
시간과 돈의 문제에서 보자면 보편적인 진리다.

이때 시간과 치의술과 벌이의 공통분모는 돈이다.
치과 의사의 입장에서 환자가 빠른 치료를 받기를 바랄지,
환자에게 고통에 대한 인내와 관용을 기대할 지는 모호한 문제로 남는다.
한가지 알아챌 수 있는 사실은 치과의사에게 환자는 제대로신경(자율신경)처럼 통제 불가능한 변수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치과의사가 통제할 수 있는 변수는
업무시간과 자본, 기술이며, 그것으로 치과의사는 승부를 내야 한다.


이것에 관해서는 Solow교수의 성장회계공식이라는 것이 있다.



생산성의 증가율 = 1/3(근로시간당 자본의 증가율) + 기술의 성장률


이것은 기술이 노동시간이나 자본보다 3배의 생산성을 기대할 수 있게 해 준다는
계량경제학의 원리다.

말 수가 참으로 많이 줄어든 나날을 보내지만
가끔씩 주변에서는 달근한 유혹들이 오고 간다.
요즘의 관심사는 돈과 미래다. 돈의 유혹은 참 뿌리 치기 힘들다.
가까이 있는 듯한 금전적인 안정보다 3배가치를 가지는 기술(교육)을 위한 마음가짐을,
물결 없는 조용한 호수처럼 유지하기란 참 힘들다는 생각을 했다.

치과에는 6천원의 충치 환자도 오고, 6만원의 스케일링 환자도 오고,
60만원의 신경치료 환자도 오며, 250만원짜리 임플란트 환자도 온다.
임플란트 환자가 치과를 선택하는 기준은
치과 의사가 얼마나 안정적으로 임플란트 시술을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에 달려 있다.
그리고 기계적인 임플란트 이상의 독창적인 기술을 창조하는 능력이 있다면
그의 가치는 돈이라는 한계를 넘어선다.
우상향 곡선의 기울기는 항상 점점 증가한다.

나는 사랑니를 뽑으러 갔고,
치료용 의자에 누웠고, 어김없이 식은땀으로 범벅이 되었고,
사랑니 하나를 뽑는데 의료보험 공제와 더불어 10% 할인을 받았다.
치과 의사로서는 안타까워 했을지 모를 전형적인 6,100원짜리 환자였다.
그러나 무통의 발치술을 가진 의사가 있다면
나는 12,200원을 주고서라도 그를 찾아 갔으리라!

그 6,100원짜리 환자는 서슬퍼런 뺀치에 발가벗겨진 사랑니의 최후의 외침을 들었다.
그 순간 이상하게도 머리속에는 성장회계공식이 떠올랐고,
사랑니의 마지막 바직거림은 결심의 종지부를 찍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는 6천 백원의 사랑니만 뽑는 치과 의사는 아니지만,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나는 6만원의 스케일링만 하는 치과 의사는 아니지만,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나는 60만원의 신경치료만 하는 치과 의사는 아니지만,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나는 250만원의 임플란트만 하는 치과 의사는 아니지만,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그러나 이 무통의 발치술은 저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제대로 찾아 오셨습니다.
그렇게 제대로신경의 작용처럼 환자들은 불가항력적으로 무통발치의 명의를 찾아갈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아찔하게 혼줄을 뺀 후에는 어안이 벙벙하여 간호사의 말도 잘 알아듣지 못했으나,
환자가 통제당하게 되던 순간을 잊지 않으려 집중했다.
앞으로 딴 생각 하지 않고 내 가치의 우상향 곡선만 떠올리기로 다짐했다.

나는 사랑니를 썩혔으나, 사랑니는 나를 떠나며 선물 하나를 주었다.

괴리

7월 18th, 2008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의 비교는 항상 곁을 따라다니는 문제이다.

지금까지 대체로 하고싶은 일을 마음껏 하며 지내왔다.
공연이 그랬고, 여행이 그랬고, 불어가 그랬다.
친구들을 보고 이야기하고 술을 마시고 교감했다.

그러나 나이를 먹고 시간이 갈수록 해야하는 일들이 가슴에 들어온다.
언어가 그렇고, 대학원이 그렇고, 취업이 그렇다.
한번의 대학원의 실패는 문득 그런 사실을 더욱 깨닫게 해 주었다.

언젠가, 해야하는 일들을 충실하게 하지 못한 죄책감이 가슴 뻐근하게 느껴졌으나
되새겨 보았을 때 그것이 괴로운 것은 아니었다.
단지, 목표를 내보이며 자만의 구린내를 풍기는 자신이 미웠던 것이고,
없는 것을 버리고 있는 것에 땀 냄새를 배 물리는 것이 필요했던 것 같다.
하고 싶은 일은 자만이고 해야하는 일은 순리라 여겼던 데서 비롯된 괴리였다.
그런데 괴리는 없었다.

많은 시간 동안 찬찬히 하고 싶은 일과 해야하는 일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지금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내가 해야 할 일들이라는 사실이고,
그것을 할 때 나는 진정으로 안도하고 만족하는 자신을 발견하였고
이미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이 맞아들어가는 조화를 누리고 있었다.

그것들 사이에 괴리는 없다.
다만, 내가 하고 싶은 것- 허무맹랑하게 높은 목표 -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땀 냄새가 있을 뿐이다.

나의 마지막 괴리는
하루하루 모든 상황이, 그리고 환경이 나와 나의 목표를 든든하게 지탱해 주어
눈물 나도록 고맙고, 감사하게도 나는 열심히 성장하면 되는 사치를 누리게 해 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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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의 소소한 일상 – 삼청동

4월 20th, 2008




오랜만에 반가운 친구들과 작은 모임을 가졌다.
삼청동 수제비의 맛은 예전 그대로, 삼청동의 모습도 예전 그대로.
그때와 변한것이라면 조금 덥수룩해진 내 수염과 을씨년스런 봄 볓에 튼 내 볼살일 것이다.
인생지기 친구들이 하나 둘씩 자리를 잡았고,
그리고 지금 어느덧 대다수가 직장을 가지고 사회에서 열심히 자신의 몫을 해 나가고 있다.
또 그 친구들이 서로 엮고 엮어주며 아웅다웅 살아가는 오늘이 수제비집의 동동주 향내에 취해서 그득하였다.

주원이형이 이끌고간 미선이네는 아늑한 분위기의 가게였다.
기타 연습을 하고 계시던 주인 아저씨가 있는 그곳에서는
몽환적이거나 여성 보컬의 꾸밈없는 나른한 발라드가 흘러나왔다.
서로에게 쓰는 편지한 통과 샤또 무엇인가의 와인을 마시면서 참으로 편안한 저녁이 되었다.


2008년 4월 11일 삼청동 미선이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