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이다.
언젠가 한 친구는 겨울은 자기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계절이라 한 적이 있었다.
그날 그 친구에게 볼을 에는 동통은 ‘내가 살아있구나!’를 느끼게 해준다 하였다.
그때부터 나도 겨울바람이 얼굴을 채찍질 할 때면 그 말을 처음 듣던 순간을 떠올리게 되었던 것 같다. 사계절을 통틀어 계절이 피부에 닿는 메시지가 가장 따가운 계절이 겨울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겨울은 여러모로 의미를 부여하게 되는 계절이다.
나에게 2009년의 겨울은 자신을 햘퀴는 동통을 주었다.
나에게 있어 참 중요한 결정을 한 시기였다.
인생을 참 편하게 사는 방법이 눈에 보였지만 더 큰 이상과 학문적 호기심을 택했다.
2009년의 겨울에 35만 원의 월세를 내고, 만원의 교통카드를 충전하고, 7천 원의 정종을 샀지만, 월세는 한 달을, 교통카드는 하루를, 정종은 1시간을 달래 주었을 뿐 그 이상은 아니었다.
대한민국에서 한 달을 살아가는 것은 참 힘겨운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내 손으로 땀을 흘려 일구어내는 열매로 한 달을 산다는 것은
참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보았고, 그것이 현실이고, 누구나 그렇게 살아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느 순간 아프리카에서 벌어온 잔고의 아우성은 겨울바람처럼 시렸다.
회사에 남아 있었다면 이 모든 것이 참 편하게 이루어졌을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사실이다. 2년 동안 벌었으면 서울에 작은 집 하나 정도 마련할 수 있었지 않나 후회한 적이 있었다.
지금까지 현실 만족과 외면은 내 주위의 모든 것을 쉽게 만들어 주었다.
더 높은 이상을 추구하지 않고 현실에 만족하면 모든 것이 편해지고 쉬워졌다.
어려움을 뒤에 두고, 쉬운 길을 택하더라도 후회하지만 않으면 잘한 거라고 자위했다.
물론 주어진 상황에서 책임감 있게 살아왔다고 자부하지만,
노력으로 앞질렀다기보다 그냥 그것이 쉬웠던 것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이룬 것을 자랑하지만 스스로는 자랑스러울 수 없다.
이상을 쫒아 가는 것은 항상 어려움과 노력이 따르는 법이다.
나에게는 더 나은 이상이 보인다. 더 잘할 수 있는 내가 보인다.
보이지 않는다면 외면하겠지만 내 눈앞에서 내 머릿속에서는 항상 보인다.
그래서 열심히 살아왔음에도 열심히 살지 않았다는 자책이 가슴속에 후회로 남아 있었다.
내가 가장 바라는 것은 내가 보는 이상을 실현하는 것이고,
그것은 스스로 행하지 않으면 갈급할 수 없는 목마름이라 생각했다.
처음으로 쉬운 것 보다는 이루고 싶은 것에 도전하기로 했다. 대학원이다.
죽도록 하고 싶은 절대 이성의 세계!
소쉬르나 촘스키와 같은 천재성이 나에게 없다 하더라도
죽을 만큼 절대 이성의 세계를 헤엄쳐 보고 싶었다!
누군가는 부모님이 노력을 많이 하셔서 살랑살랑 교문을 나들겠지만, 그 생각은 모든 것을 접고 전력투구하러 가는 나를 많이 화나게 한다.
나는 더 높은 차원을 보리라. 작은 소쉬르, 작은 촘스키가 되리라 그리 다짐했다.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학문은 하면 할수록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보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열심히 하면 할수록 힘든 것이 학문이다.”
겨울바람과 같다는 생각을 했다.
겨울바람이 나의 볼을 햘퀴듯이 학문이 나의 치부를 햘퀴리라.
나는 누군가에게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그 겨울바람이 좋고,
2009년 내 볼을 햘퀴는 겨울바람처럼 자신을 열심히 햘퀴리라.
2008년 카메룬을 정부 관료들을 만나며 활약하던 나는
2009년 컴퓨터 앞에서 소소한 번역을 하고 있지만,
나의 땀으로 하루 세끼 따뜻한 밥을 먹고, 교수님이 추천해주신 언어학 책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에 감사한다.
한 손에 책을 들고, 한 분야의 최고의 석학들을 만나고, 지도받을 수 있는 현실이
사치스러울 정도로 감사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스스로 찾아오는 겨울바람처럼 그렇게 스스로 서 있는 내가 마냥 고마웠다.
“..잘한 거라고 자위했다.”
한표! 크크크~
어느 순간 아프리카에서 벌어온 잔고의 아우성은 겨울바람처럼 시렸다
이 대목에서 가슴이 시리네.